김중규 담임목사

“구사축” “구사축” “구사축”
7월 24일 주일부터 우리는 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구주의 사랑 축제”의 줄임말이다. 구주(Savior)의 사랑을 증거하는 축제이고 9주(Nine weeks) 동안 벌이는 전도 축제이다.

어언 2년의 팬데믹 기간 우리는 격리되었고 움츠러들었다. 비전이 불투명해졌고 열정은 사그라들었다. 사탄의 바이러스 전략에 말려든 것인가? 지역 전도와 열방 선교가 여러 방면에서 봉쇄당했다. 팬데믹이 어느 정도 풀려가는 중인데도 영적 그로기 상태에서 비틀거리고만 있을 것인가? 그럴 순 없다! 그 옛날 권투 선수 홍수환이 4번의 다운을 당하고도 일어나 카라스키에게 회심의 한방으로 KO승을 거둔 것처럼 우리도 일어나 사탄에게 일격을 가해야 한다.

2022 표어 일어나라 함께가자!

2022 표어 일어나라 함께가자!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일어나라 함께 가자!”이다. 가을로 접어드는 지금, 구주의 사랑 축제를 위해 전교인이 일어나 함께 달려가고 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그들과 함께 축제를 벌이셨다(눅15:2). 예수님은 구사축의 원조이시다.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눅15:7). 우리가 구사축을 벌이는 이유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잃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하신다. 한때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분들이 많다. 또한 RTP 지역에는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줄도 모른다. 보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잃어버린 자들로 여기고 찾아 나서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다. 잃어버린 양이 알아서 목자에게 돌아오지 못하듯이, 잃은 동전이 스스로 여주인의 손에 들어올 수 없듯 우리가 그들을 찾을 때까지 찾아서 주님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사람(영혼)을 얻고자(고전9:19) 무지 애썼다. 우리는 더 많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더 많은 지식? 부? 명예? 안정? 편리? 즐거움인가? 아님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인가? 사도 바울은 그의 업(소명)이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니 응당 그래야겠지만 나까지 굳이 바울처럼 열성적일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면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각자는 어떻게 주님 앞에 나아와 구원을 얻을 수 있었는지 돌아보자.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은 그 누군가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한 후 우리를 찾아내어 주님 앞으로 데리고 옴으로 구원받았을 것이다. 나를 찾아준 그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계속 세상에서 방황하며 서성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분의 노고만큼 값진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 노고는 또한 구주 예수님의 사랑인 것이다. 이번 구사축의 시간은 그래서 우리 차례이다. 나 한 사람의 참여로 또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발 벗고 나서지 못할 이유가 또 무에란 말인가?

많은 성도님들이 잃어버린 영혼(우리의 VIP)을 향해 기도하고 찾아 나서는 종종걸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한없이 기쁘고 즐거우며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속삭여 본다. 나 역시도 나의 VIP를 향해 나아갔고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흐뭇하였다. 이번 구사축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없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