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복 자매(변호사, 아가페 5 목장)

미국에서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에 계약서를 주고받는 일이 생긴다. 개인 간의 중고차 매매에서도 Bill of Sale 등의 계약서를 통해 구매자, 매수자와 차량 가격을 명시하여 계약서를 작성한다. 얼마 전 우리 사무실로 자동차 계약서가 잘못되었다는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2022년 신차를 3만 8천불에 사기로 계약했는데 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금을 낸 후에 집에 와서 보니 계약서에 4만불로 되어있고 2천불 어치의 워런티가 함께 계산되어있어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계약을 무효로 할 수는 없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계약서의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계약서 전체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서명한다는 것은 내가 무슨 내용에 동의하는지조차도 모르고 동의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뢰인은 다른 사람의 과실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이틀 후 보험 담당자가 5백 불을 줄 테니 합의서 (release)에 서명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사고의 규모도 크고 몸도 많이 다쳤는데 과실 운전자의 보험사로부터 병원비와 위자료(pain and suffering)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병원 치료를 시작하지도 않고 합의(release) 서류에 서명을 해버렸다. 시간이 지난 후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테니 병원비를 달라고 보험사에 요청했지만 이미 합의서에 서명하시고 5백불을 받으셨기에 더 이상의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거절 당했다. 법원에 가서 모르고 서명했으니 합의서를 무효화하고 싶다는 주장을 해도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어떤 분은 친한 친구가 사업을 같이 하자고 사업 자금으로 6만불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친구에게 6만불을 돌려 달라고 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 세 차례의 체크가 오간 거래 내역서가 있었지만 6만불이 빌려준 것이라는 계약서가 없어 결국 6만불을 돌려받지 못했다. 믿을 만한 사이, 친한 사이, 잘 아는 사이일수록 꼭!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한국 사람끼리 야박하게 계약서까지 쓰냐, 날 믿지 못하냐, 깐깐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할까 봐 하는 마음으로, 또는 친한 사람이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들 간에 사이가 좋을 때 또는 일이 잘 진행될 때 필요한 것이라기보다 일이 합의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만드는 것이다.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계약이 체결된다. 계약에서도 한번 서명된 계약은 매우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취소가 어렵다. 그래서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가능한 주요 안건은 자세히 적어야 하고 계약 당사자와 구두로 약속한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계약서에 이렇게 적혀 있지만 내가 실제로는 이런저런 것들을 더 해줄게.”라고 반복해서 말했더라도 또는 계약서 외의 다른 서면으로 확신을 주었다 하더라도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소송을 하게 되더라도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은 합의된 계약으로 주장하기 어렵다.

계약 체결이라는 강을 건너기 전에 최소한 계약 당사자와 계약의 내용은 반드시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한번 건너 간 강은 되돌아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