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 3 이혜경

오늘 목장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기도 말씀으로 몰랐던 말 씀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암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우분을 위해 어느 지체분께서 올리신 야고보서 5장14절에 서16절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 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14 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 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 리라(15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 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 니라(16절)

아프신 분들을 위하여 간혹 기도 하였지마는 그냥 나의 방 식대로 기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구절은 아무 나, 아무렇게나 기도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아픈 이들은 먼저 교회에 알려야 함을 알았습니다. 교회의 장로들 을 청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여야 합니다.

저는 만약 몸에 질병이 찾아오면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 며 치료하다가 어쩔 수 없으면 할 수 없이 교회에 알려진다 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신 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나의 노력만으로 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의식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또 말씀에서는 ‘믿음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막연한 소망으로, 단지 나의 선한 마음만으로 바라는 대상도 분명치 않은 기원은 믿음의 기도와는 다를 것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모호한 기도를 드렸던 것은 아닌지 그것도 생명을 다투는 위중한 환우를 위해서 다시금 돌아보았습니다.

또한 믿음의 기도는 먼저 병든 자를 구원하신다는 사실도 이 제 알았습니다. 구원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를 일으키신다 고 합니다. 우선 병부터 낫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육신의 고통은 절박하고 영혼구원은 나 중에라도 괜찮다고 여기겠지만 주님이 일하시는 순서는 다 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 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을 보면 육신의 병과 죄의 문제를 함 께 다루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16절에서는 엄청난 말씀이 이어집니다.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왜 ‘죄’에 대한 말이 나오는지 좀 당 황스러웠습니다.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려거든 먼저 나의 죄를 고백하며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서로가. 환 우와 나, 나와 너, 우리가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 하여 서로 기도하라는 말씀에 찔림이 왔습니다. 이런 말씀을 지키며 기도하는 사람이 의인이고 의인의 간구라야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이 구절이 마음에 울림이 되었습니다. 정말 병 환 중에 계신 지체를 사랑하지 않고는 제대로 기도를 할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육신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 상황입니다.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한계를 입고 오셨던 주님! 그리고 온전히 다 극복하시고 다시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합니다.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기억나게 하시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더 나아가 아픈 지체를 위해 병 낫기를 기도할 때 주님이 일 러주신 순서대로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잊지 않고 기록하는 시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