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o Felise 집사(영어부)

저는 신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신실한 천주교인으로 성장하도록 일요일에는 미사를 드리고, 모든 성찬을 받는 것을 격려하셨습니다. 그런 삶이 옳다고 느꼈고, 천주교 종교 안에서 나의 신앙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표를 찾아서 천주교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서 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실하게 주일 성수하며 모든 성찬을 받은 천주교인. 천주교인으로서 저의 목표였습니다. 저는 그 목표를 위해 교리 문답을 공부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11명의 남매 중 맏이로서 더 많은 특권과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런 만큼 청소년기와 청년 때에 많은 역경에 처했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옛 삶에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되는 사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기도문을 외우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 제리의 집으로 하교하게 되었는데, 제리의 부모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리문답 하면서 외우던 “성모송”과 “주님의 기도” 외에 모르는 상태에서 제리의 부모님께서 떠오르는 대로 기도하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 분들의 기도는 즉시 천국에 닿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으로 보였고,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고등학생 때, “예수쟁이”라 불리던 친구 로니스가 생각납니다. 로니스는 늘 저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셔”라는 말을 종종 해주었지만, 저는 귀찮아서 대충 대답하고 그녀를 피해 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니스를 봤을 때도 그녀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는 거 알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성의 없게 “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 놀림을 당하면서까지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니스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고, 그녀의 태도는 한결같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사건은 제 아내 숙희를 만난 때였습니다. 몇십 년 동안 세상을 쫓고 살다가 친구를 통해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숙희는 제 친구 제리의 가족과 똑같은 방법으로 기도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지금은 저희에게 세 자녀가 있고, 결혼생활 초반에는 숙희와 저희 자녀들은 한국 교회를 참석하고 저 혼자 성당에 갔습니다. 그런 삶이 괜찮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저희 자녀들이 교회에 잘 적응하고 자랐으면 싶어서 가족이 함께 한인 교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장소만 바뀌었지, 저는 변함없는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숙희가 저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걸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하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몰랐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신 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결국에 브랜트우드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예수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새로운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딱 저를 위한 듯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래리 목사님께서 저의 신앙생활을 설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몇 년간 신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다가, 종교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헌신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영접하면서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섬기고 싶은 마음에 기회를 찾다가 감옥 사역을 하는 “Cell to Cross”에서 찬양 인도자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15년 동안 동일하게 사역했으나, 코비드 터지면서 감옥, 교도소, 소년원 모든 곳이 다 격리하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그럼에도 섬김의 마음이 꺼지지 않아서 코비드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혔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문을 또 열어 주셨습니다. 안티옥이라는 새로운 동네에서 Community Outreach Center의 찬양 인도자로 섬겼습니다. 그 섬김의 시간도 축복의 시간이었지만, 은퇴할 날이 다가오면서 숙희와 저는 동부로 이주할 마음으로 여행하러 왔다가, 고민 끝에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저희 두 아들, 제임스와 조슈아가 아직 캘리포니아 주에 남아있다는 점이지만, 하루 빨리 그들도 이쪽으로 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좋은 점은 저희 딸 다이아나가 이쪽으로 편입을 미리 했다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주한 후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교회를 구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예배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코비드가 터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이주를 하게 돼서 교회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에 많은 교회가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방문이 어려웠으나, 저희 집에서 가까운 한 침례교회를 찾아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도 친절하고 설교도 매우 좋았고,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여서 그 교회로 정하려고 했으나, 무언가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숙희가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를 찾았는데, 모든 부분이 저희와 맞아떨어져서 좋았습니다. 짧은 기간 안에 코비드 이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로 보였고,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맞춰주는 영어부와 한어부 사역이 진행되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찾게 되어 매우 행복합니다. 현재 iFKBC 사역에 동참하여 미국에 와서 이 곳에 정착하는 과정에 도움이 필요한 가정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사역을 함께 하는 봉사자들의 헌신과 겸손함 덕분에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역입니다.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이며, 저희가 그런 교회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