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순 자매(카리스 1목장)

“생명물을 발라 그러면 피부병이 곧 나을 거야,” “생명물을 마셔 그러면 곧 열이 내릴 거야”

여섯 일곱 살 무렵 같은 동네에 살던 이모는 저를 개울 물놀이 순서가 있는 여름 성경학교에도 데려가고 빨강 초록 노랑색의 동그란 사탕이 깡통 가득 들어있는 사랑방 선물을 나눠 주는 크리스마스 예배에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빠는 물론이려니와 엄마도 이모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은 하지 않으셨죠. 엄마 아빠가 다니지 않으셨으니 저는 여름과 겨울 계절 특수를 노리는 계절 신자(Seasonal Christian)에 머무르다 어느 날부터 흐지부지 다니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교회라는 곳을 다시 다니게 되었을 때 전도관, 신앙촌, 박태선 장로라는 이름과 엄마가 교회에 다니지 않으셨던 이유의 연결 고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모가 박태선 장로가 직접 안수 했다는 생명물을 발라주고 마시게했었는지를요.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인 친정엄마는 당시 과수원 소유주이자 고깃배와 무역선의 선주임과 동시에 중국, 일본, 필리핀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시던 외할아버지의 막내딸로 태어나 평소 말린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간식으로 즐겨 먹으며 뜨끈하게 데워진 아랫목에서 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넣은 평양냉면을 기생집에서 야식으로 배달시켜 먹으며 겨울을 나던 금수저였답니다. 그러다 6.25 전쟁이 터져 외할아버지와 함께 부산 영도에 피난을 오게 되었고 교회 일에 열심인 한 여자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외할머니와 사별 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사업과 동경 유학 중인 자식 세 명 뒷바라지, 교회 일에만 열심이었던 외할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세 그 권사님에게 푸욱 빠졌고 급기야 그 여자 권사님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여자 권사님의 전도로 외할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교회에 다 헌납하고 재림 예수를 기다리기 위해 신앙촌에 들어갑니다. 전쟁통에 급히 챙기느라 모든 재산이라 해봤자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외할아버지에겐 가진 것의 전부를 드렸으니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지 않으셨고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여자 권사님도 어느 날 연탄가스로 질식사하게 됩니다. 그 후 외할아버지는 영적 우울증에 빠져 지내셨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고생이라고 해본 적도, 일이라는 것도 해본 적이 없었던 저희 친정엄마는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이복동생을 위해 생활 전선으로 내몰렸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버지와 이복동생을 먹여살려야 했었습니다. 자신도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을 텐데 친정 엄마는 이복동생을 위해 학비를 벌고 쌀을 구하고 일거리를 구해야 했습니다. 6.25 전쟁도 원망스러웠지만, 이단에 빠져 자신을 그 험한 고생길로 몰아넣은 아버지가 밉고 아버지를 미혹했던 그 여자 권사님이 더더욱 미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 엄마가 교회를 믿고 다닐 수 있었겠습니까?

코로나 기간 동안 방역 지침 위반으로 이만희의 신천지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가 박태선 장로를 신봉했으며 그의 교리를 신천지 교리로 많이 사용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일을 보고 들으면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바보 같고 사리 분별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까지 능했다던 외할아버지. 성경 말씀에 밝고, 뛰어난 사업 수완과 믿음의 본이 되었다던 청지지 홍 장로가 박태선이란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어 전 재산을 다 바치고 천국 가겠다고 하늘만 바라보며 기도하다 영적 우울증에 빠져 생을 마감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5주간의 이단 경계 세미나는 제 가족의 믿음의 잔혹사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단은 어린 시절 저를 달콤한 사탕 알이 가득한 사랑방 선물처럼 유혹했고 제 외할아버지를 미혹했으며 제 어머니를 믿음으로부터 끊어지게 했습니다. 이단은 지금도 누군가를 사탕처럼 달콤한 위로로, 때로는 필요의 채움으로, 때로는 호기심을 메꾸는 지식으로, 때로는 사명감으로, 여러 색깔 여러 모양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미혹에 빠졌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저희 친정어머님이 팔순이 넘어서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한 일임과 동시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일어났기에 제가 경계하게 되고 구별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모든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 성도 여러분은 이런 믿음의 잔혹사를 겪지 않으시길 기도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