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 사모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아이들의 개학 첫 날, 아인이와 유리가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버스가 우리집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멀리멀리 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첫날이라 익숙지 않아 버스를 잘 못 탄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버스에는 내가 함께 타고 있었고,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중간에서 내려 달라고 요청해 아이들과 함께 내렸다.

그런데, 우리가 내린 곳은 전혀 모르는 낯선 동네였다. 설상 가상으로 지갑도 핸드폰도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를 헤매다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미안해하며 전화기를 빌렸다. 그렇게 겨우 전화기를 빌려 버튼을 누르려는데, 남편 전화번호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이 번호 저 번호 다 눌러 봤는데 아니었다. 당황스러워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결국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 채 어렵사리 붙잡은 행인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터벅터벅 걸어 근처에 보이는 한 교회에 도움을 청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도 전화번호와 집주소 등의 아무런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 실랑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날이 저물어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게 무슨 청승이냐 싶어 얼른 집에 가고 싶었지만 다음날에도 잡힐 듯 말 듯 야속한 기억의 가닥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부분 기억상실증일까? 치매가 오는 것일까? 자욱한 안개 속에 갇힌 것 마냥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저기서 우리 교회 분(말하면 다들 알만한 분)이 다가오며 “여기는 어쩐 일 이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분께 사정을 말했더니 “아, 박목사님 번호요? 저한테 저장되어 있지요.” 하며 전화를 탁 걸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은인을 만났다. ‘아, 살았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오늘 이 분을 여기서 만나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결말은 해피앤딩이었다. 우리의 히어로인 그가 멋지게 나타나 나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데리고 갔다. 고생했다며 위로와 격려도 해주면서. 남편도 우리를 애타게 찾고 있었고, 그 마음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도 고생해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집에 오니 너무나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해서 정말이지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아… 꿈이었구나.’ 꿈에서 너무 시달렸는지 일어나서도 계속 피곤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자꾸만 떠올랐다. 어젯밤 꿈 스토리를 찬찬히 되짚어 보다가 문득 마음이 뭉클해졌다. ‘맞아, 지금도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적지가 잘못된 버스에 탄 줄도 모르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그들 중 일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끝까지 갈 수도 있고, 일부는 중간에 눈치를 채고 내릴 수도 있지만, 그들은 천국으로 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전화번호도 주소도 모른 채 각자 나름대로 찾아 헤맬 뿐이지. 그러나 나는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잖아. 집을 찾아 방황하는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어야 해. 그들이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안전하게 본향 집으로 인도해 주시고, 그들도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행복하게 영생을 누릴 수 있어.’ 작은 울림이 잔잔한 파문처럼 번져갔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일찍 예수님을 영접했고 언제나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큰 형처럼 아우의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왔을 수 있다. 내 자신이 보기에 나는 항상 길 잃은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꿈에서나마 경험해 보니, 누군가 다가와 먼저 도움의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필요한 사람, 그리고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길 기다리는 이들의 상황이 얼마나 절실 한지 더욱 실감나게 와 닿았다. 또 한가지 사실, 나도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한 때는 아우의 입장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준비가 한창인 ‘구주의 사랑 축제’. 매 주일마다 전도에 대한 말씀이 전해지고, 이 축제를 위해 여러모로 애쓰며 마음을 모으고 있다. 이 축제와 이 말씀들, 그리고 어젯밤의 꿈이 연결고리처럼 이어졌다. 요즘 나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이 있나? 길을 잃고 헤매는 이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버스를 잘 못 탄 줄도 모르고 스스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잘 못 가고 있는 줄 알지만 바르게 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져진 질문들이었다.

중국내륙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의 창시자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한 일화가 떠오른다. 그가 중국에서 한 청년을 만나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청년은 “나의 아버지는 평생 진리를 찾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하며 안타까워했다. 이 말을 들은 허드슨 테일러는 진리와 인생의 본질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수많은 이들이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 지금도 애타게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을 그 누군가가 있을 거야.’ ‘주님, 그 사람을 저에게 보내 주세요. 제가 그 사람에게 집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 주겠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순간 또 한가지 깨달음이 온다. ‘앗! 아이들 깨워 야지. 지각하겠다!’ 오늘은 진짜 아이들 개학 첫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