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철 목사(의사)

코로나의 두려움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새로운 변이의 발현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고 일부는 입원하고 있지만 처음 코로나가 발생하였던 2019년도에 비해 코로나로 인한 고통과 암울한 상황은 서서히 호전되고 있어 보입니다. 암울했던 기나긴 터널의 끝에 작은 소망의 빛이 비치고 있는 시기인 듯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육체적 고통을 겪었으나 코로나 기간 중 또 다른 측면에서 정말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정신적인 절망과 외로움이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내내 ‘내가 언제든지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고 걱정되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2019년부터 수년에 걸친 이런 두려움에의 노출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고 탈진하게 했습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은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수도, 같이 식사할 수도 없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은 더욱 우리의 정신을 황폐케 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실직당했고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나도 코로나에 걸려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라는 두려움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었습니다. 뉴욕 거리에 쌓였던 시신을 보면서 우리는 두려워했고 불안해했습니다. 코로나는 사람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지치고 두렵고 불안하고 또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한 만성적 우울감(블루)에 시달려 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과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시험도 주시지만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내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고전 10:13). 자비와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은 인류의 재앙과 그 속에 함유된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긍휼을 잃지 않으시고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을 통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인 피폐함을 이기는 방법을 육체적, 사회적,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코로나의 두려움과 공포는 늘 내 머리를 맴돌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불안과 공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의 회로(circuit)에서 증폭(amplification) 됩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정되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압도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 속에 머물면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예언을 진짜인 양 믿게 되고 그 불안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문제는 그 일이 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미래를 가정하고 거기에 눌려 마치 그 일이 실제인 것처럼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 결과는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감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머릿속의 전쟁을 종식하는 첫 번째 방법은 머리가 아닌 ‘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해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산책하고 따뜻한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몸을 일으켜 건설적인 무엇인가를 하면 마음이 따라 옵니다. 마음이 먼저 정리가 되어 산뜻한 마음이 되고 나서야 무엇을 하는게 아니고 무거운 마음이 여전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도 영향을 받아 그 마음에 긍정의 기운이 역사하는 체험을 합니다. 이는 몸과 마음이 분리가 되어 있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산책 또는 집안의 텃밭을 가꾸는 일 등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당장 실천해 보십시오.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머릿속 전쟁의 소리가 점차 잦아드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연결되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코로나의 고립감에 대한 해답은 ‘연결됨’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으나 한 가지 좋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독처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혼자 독처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편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를 주셔서 ‘함께’하도록 하셨습니다. 즉, 인간은 정서적으로 연결된 공동체 안에서 살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고립되어 혼자 있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공동체 가운데 있을 때만 인간다운 것입니다. 코로나가 우리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고립’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소통하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고립되어 보니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건강한 공동체를 찾고 건강한 교회를 찾아 그 구성원으로서 멤버들과 정서적, 영적인 교류를 시작하십시오. 공동체에 연결됨으로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은 코로나의 고립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 해결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라’ 입니다. 코로나가 두려웠던 궁극적인 이유는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하던 인간은 코로나로 인해 죽음이 먼 곳이 아닌 바로 내 옆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매일 확인해야 했고 그래서 늘 마음이 블루 했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여기 죽음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신 분이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토록 죽지 아니하리니” (요 11:25-26).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원토록 죽지 않는다” 하심으로 죽음의 문제에 대해 완전한 해결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인류 역사에 어느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주었던 수많은 성인들과 지혜자들은 놀라운 삶을 살고 당대와 후대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지만 다 무덤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의 무덤만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로 인류의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신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죄로 인해 사망이 왔는데 예수님께서 속죄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이 더 이상 믿는 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의 두려움은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안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코로나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인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블루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예수님을 믿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는 우리를 우울하게 했습니다. 증폭된 두려움으로 혼돈스런 생각들, 사회적인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 기저의 문제였습니다. 머리가 아닌 몸을 사용하고, 건강한 공동체에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예수를 믿어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 하게 될 때 코로나 블루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코로나 같은 전 인류적 재앙은 얼마든지 또 올 수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도 이 땅에 유토피아는 오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부활과 소망을 붙들 때만 죽음을 이기는 평강이 우리로 하여금 코로나보다 더 큰 재앙도 견디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