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은 우리 교회가 39살이 되는 생일입니다. 1983년 5월 29일에 케리에 있는 First Baptist Church에서 미션 교회로 우리 교회가 창립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를 거쳐 가셨지만 교회가 창립될 때 부터 굳건히 자리를 지키시고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어른 중에 한 분인 권신일, 권병순 집사님과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려 합니다. 권신일 집사님은 별 다른 말씀이 없으시고 주로 권병순 집사님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습니다.
슬하에 큰딸 쥴리, 아들 혁 두 남매가 있습니다. 쥴리 집사님은 남편 윤정한 집사님과 영어부를 섬기고 있고 아들 혁은 샬롯에서 치과 병원을 하면서 그곳 교회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자녀들도 같이 두 자녀를 두어서 이제는 두 분도 틴에이저 손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 할머니지만 아직도 목자로 목장을 섬기고 계십니다. 주일 아침이면 운전하지 못하는 어머님들을 차로 모시고 교회에 오시고 여전히 부엌일을 돌보시는 권병순 집사님, 얼마 전까지도 주일 아침이면 현관 입구에서 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을 허리 굽혀 인사로 맞으시던 권신일 집사님입니다. 두 분은 늘 저에게 귀감이 되시는 신앙의 선배님이십니다.

박민규 기자(아바드 1 목장)

박, 두 분이 우리 교회에 출석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권, 1983년 5월에 오십여 명의 성도님들이 모여서 케리에서 교회를 창립했지요. 그때 더랄리 장로교회에서 교리적인 문제로 분리되어 마음이 맞는 몆 분이 함께 침례 교회로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박, 그때 담임 목사님이?
권, 창립 예배를 드릴 때는 김세헌 목사님이셨지요. 목사님, 사모님은 지금도 Knightdale에 사세요. 한 번씩 안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박, 창립할 때 성도님은 누구누구였나요? 아직 우리 교회에 계시는 분이 있나요?
권, 창립 예배를 드린 분은 장주환 집사님 부부가 계시고 저희 부부는 사실 창립 후 두어 달 후부터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케리에 있는 First Baptist Church에서 미션 교회로 소 예배당을 빌려서 같이 예배를 드렸지요. 그렇게 초창기에 있던 분 중에 윤화중 집사님 부부, 김채옥 집사님, 신은선 집사님, 김영수 집사님 부부, 서니 집사님 같은 분들이 아직 우리 교회에 계시지요. 다 이름을 꼽지 못하겠네요.

박, 저는 결혼을 하고 1991년부터 교회에 초신자로 출석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박인화 목사님이 담임이셨습니다.
권, 그렇지요. 박인화 목사님이 처음에 1987년에 사우스 이스턴 신학교 신학생으로 처음에 교회 왔다가 그해 전도사님이 되시고 좀 있다 김세헌 목사님이 침례 교단 주총회로 이임하면서 박인화 목사님이 담임이 되셨지요.

박, 케리 교회 때를 기억하면 건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권, 저희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케리에서 미션 교회로 있다가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손으로 건축을 하고 1994년에 헌당 예배를 드리고 이사를 했지요. 그동안 미션 교회로 우리가 모교회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독립할 때가 되어서 1993년에 이곳에 부지를 마련하고 2년 동안 우리 손으로 교회를 지었지요.

매주 토요일마다 형제들은 침례교단의 자원 봉사자들과 같이 교회를 짓고 자매들은 밥을 하고 주말마다 힘들었지만 가장 감사와 은혜가 넘치던 때였습니다.

공교롭게 그 당시 건축을 시작할 때 나리 할아버지(권신일 집사님)가 임파선 암으로 항암 치료를 시작했고 2년 후 건축을 마치고 헌당 예배를 드릴 때 긴 투병이 끝나고 완치가 되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박, 저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 지금 본당의 친교실 벽 프레임을 세울 때였는데 긴 2×4인치 작대기로 벽 프레임을 여럿이서 밀어 세우는 데 권집사님이 힘에 부쳐서 밀다가 뒤로 넘어지고 또 밀다가 뒤로 넘어지고 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1995년에 헌당 예배를 드리고 지금 교회로 이사를 왔지요
권, 그 때는 한동안 건축 이야기만 하면 힘든 중에 부어 주시던 은혜가 떠올라서 늘 눈물이 나곤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좀 무디어진 것 같습니다.

박, 개인적으로 저도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집사님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 믿음은 저런 것이구나’ 하고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권, 참 감사한 것은 건축을 하면 흔히 교회에서 분란이 생기기도 하는데 우리는 건축을 하면서 오히려 성도들이 더욱 하나가 되고 또 박목사님이 말씀 훈련을 더욱 강하게 하셔서 성도들이 배운 말씀대로 교회에서 그렇게 사역하면서 믿음이 자라고 교회도 단단히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박 목사님이 우리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목회자는 부름을 따라 교회를 떠나도 성도들은 오히려 교회를 지킨다고 평신도 훈련을 매우 강하게 하셨지요.
그리고 저희는 1995년 말에 우리 교회에서 이사 예배를 드리고 훼잇빌로 이사를 갔다가 몇 년 후에 돌아와서 박 목사님이 떠나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권, 2000년 11월에 박 목사님이 사임을 하고 텍사스로 옮기시고 2002년 최 동갑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윤일현 목사님(사위 윤정환 집사님의 부친)이 임시 목회자로 2년 동안 강단을 지키셨지요. 참 감사한 것은 담임 목회자가 없는 동안에도 캄보디아와 멕시코로 단기 선교를 시작했지요. 지금은 안 계시지만 노일환 집사님, 박성욱 집사님이 파송되었고 특히 유상도 형제님과 정호 자매님 부부는 신혼여행을 캄보디아 단기 선교로 가기도 했습니다.

박, 최 동갑 목사님께서 오신 해가 몇 년이었지요?
권, 2002년 8월에 취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에 처음으로 ‘반가운 만남의 잔치’를 시작했지요.

당시에는 우리 교회가 처음 시작한 전도 집회였기 때문에 교회로서는 전도에 길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잔치나 행사가 있으면 음식이며 잔치를 준비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끝나고 나면 보람이 있고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물 떠온 하인들만 아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박, 최 목사님이 오셔서 비전 센터 건축도 하고 해마다 선교와 전도에 교회가 많은 힘을 쏟은 것 같습니다.
권, 최 목사님이 오시고 여름마다 단기 선교사를 여러 곳에 파송하고 1, 2년 장기 선교사로도 나가고 여름이면 교회가 허전할 정도였지요. 2003년에 양 사무엘 선교사님을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하고 김 중규 목사님도 그해 우리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최 목사님도 이십 여년 우리 교회를 섬기시고 재작년 말에 은퇴 하실 때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중에도 원만하게 김 중규 목사님이 후임으로 오시게 되고 그런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 돌아보면 거의 40년의 긴 세월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가장 감사한 것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권, 감사한 일이요…돌아보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네요. 지난 시간을 보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목사님들, 집사님들, 성도님들 모두 교회를 위해 열심히, 참 겸손하게 일하시지요. 그러나 돌아보면 무엇 하나 은혜 아닌 것이 없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날마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박, 그래도 그중에 혹시 아쉬운 것이 있을까요?
권, 우리가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힘들고 아쉬운 일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 아쉬운 것보다 여전히 감사밖에 없네요. 교회 생활이 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멋지시고 하나님이 저희에게 이런 교회를 주시고 섬기게 하신 것이 감사하지요. 우리 교회와 교회 식구들은 우리 가족의 삶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박, 이제 두 분은 우리 교회에서 가장 어르신인데 후배들이나 젊은 지체들에게 신앙의 선배로서 해주시고 싶은 권면이나 당부가 있을까요?
권, 제가 뭐라고 그런 말을…. 굳이 당부라면 나에게 좋은 교회를 찾기에 앞서 내가 먼저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는 어차피 우리가 모두 모여서 세워져 가는 공동체인데 좋은 믿음의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좋은 교회가 되겠지요. 반대로 먼저 베풀고 섬기기보다 교회에 대한 기대만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아쉬운 교회가 세워지겠지요.

박, 마지막으로 젊은 부모들은 자녀의 신앙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집사님의 큰 딸인 쥴리 집사님과 사위 윤정환 집사님은 영어부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사역자들이지요. 집사님의 자녀 교육에 대한 경험을 좀 나누어 주시죠.


권, 가만히 주위를 보니 신앙의 유산이 3대를 넘어가는 것이 힘들어 보입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부모로서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는데 교회에서 신앙으로 잘 자라주고 지금도 자기 교회를 잘 섬기고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 애들도 부모로서 우리 손자들에게 좋은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신앙을 지키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을 보면서 교회의 모든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기를 늘 기도합니다. 때로는 부모로서 저 자신이 참 부족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가 먼저 부모로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삶, 그 길을 남겨주려고 애씁니다. 감사합니다.

박, 저도 결혼 전에 싱글로 우리 교회에 나오면서 집사님이 해주시는 밥도 얻어먹고 결혼해서 주님을 알아갈 때 저희 세 아이들을 집사님들이 업어 주면서 돌봐 주셨지요. 그렇게 자란 우리 교회의 자녀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그 자녀들이 지금 또 이렇게 교회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지난 40여 년을 돌아보면 세상적으로 부자나 유명한 사람은 되지 못했어도 집사님 말씀처럼 우리가, 또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가족들과 같이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같이 믿음 연약한 사람도 보면서 따라갈 수 있는 삶의 발자국들을 남겨 주셔서 감사하고 두 분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