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Moon 형제(영어부)

형제 자매님들께 따뜻함과 축복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Charles Moon입니다. 이 글을 통해 Living Hope Raleigh/FKBC의 새로운 멤버가 된 저의 가족을 소개하고, 저의 신앙 간증과 왜 저희 가족이 FKBC로 오게 되었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아내 김윤경과 저는 매튜(28세), 다니엘(25세), 미쉘(17)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대학 졸업 후 독립했으며, 매튜는 맨하탄에, 다니엘은 LA에 살고 있습니다. 미쉘은 Panther Creek 고등학교 11학년 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아내와 제가 만나기 전까지는 저희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았고 하나님을 알게된 계기도 달랐지만, 올해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부로 맺어주신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1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4살 때 미국으로 왔습니다. 아내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내는 1988년 이화 여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국에 왔습니다.

윤경은 5녀 중 막내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스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본인의 의지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일요일 아침에 교회로 향할 때, 가족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거에요.”라고 선포하곤 했다고 합니다. 장인 어른과 장모님, 세 처형들 그리고 남은 가족들도 나중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반면 저의 가족은 조부모님부터 믿음의 가정으로 일찍부터 신앙심이 깊고 굳건했습니다. 저의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두 살 때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교회 소풍을 갔던 일입니다. 몇 년 후, 부모님은 캐나다를 떠나서 뉴욕으로 이사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믿음이 매우 좋으셔서 한인 이민자를 위한 예배 장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셨고, 퀸즈에 교회 두 곳을 개척하셨습니다. 그 중 두 번째 교회는 아직도 처음 세워졌던 퀸스의 아스토리아에 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자랐고, 제 아내를 만났고, 결혼도 그곳에서 했습니다. 저의 부친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장로님으로, 어머니께서는 권사님으로 섬기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서울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셔서, 그 기술 덕분에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비교적 일찍 뉴욕 시 교외로 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비록 1,200 스퀘어피트 밖에 안되는 작은 집이었지만, 항상 저희 집에서 교회 모임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요리를 아주 잘하시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할 때는 형,누나, 그리고 막내인 제가 도와야 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어머니를 도와 모임을 준비하고 교인들을 접대하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제가 요리를 직접하게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섬김에 대해 알도록 해주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 자라서 사람들은 제가 믿음이 좋았을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언어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는 아스토리아 퀸스에 있었고, 교회가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최근 이민자여서 모든 예배와 행사는 한국어였습니다. 주일학교도 한국어가 사용되었는데 최근 한국에서 온 아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1살 때 이민을 와서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영어권 지역에서 자라서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의미 있게 복음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비로소 EM의 필요성을 교회 장로님들이 알게 되었지만 제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였습니다. 저의 어린 믿음은 내가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거라 믿었고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는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인이었고 심지어 한국계 미국인과도 사귀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제가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한국 자매와 만나고 결혼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아내를 만난 후 제 한국어는 늘었지만, 여전히 한국어 설교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위해, 나중에는 아내를 위해 한국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의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은 한국어 예배는 더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 8년 동안, 제 아내는 저 없이 두 아들과 함께 한국 교회에 다녔습니다. 저희는 그 기간 동안 여러 번 이사를 했는데, 이사할 때 마다 아내는 새로운 교회를 찾아 교회 공동체의 충실한 일원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겼습니다. 봉사의 필요성을 느끼며 자라온 저는 기꺼이 저희 집에서 모임을 갖도록 했고, 교회 성도들을 위해 음식을 대접했지만 교회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우선, 이 기간 동안 아내는 참석하는 교회마다, 소그룹마다, 모든 여성 성경공부 모임에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어루만져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주님께 돌아오도록 기도 제목을 항상 나누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저희에게 예상치 못한 축복된 선물, 딸을 주셨습니다. 아들 두명은 11살과 8살이었고, 아내와 저는 30대 후반이라 저희에게 더 이상 자녀는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부모가 원하면 특별한 절차없이 유아세례를 받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딸을 출산할 때 다녔던 교회는 아기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부모들이 의무적으로 교육에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이 교육에 참석하면서 제 마음이 열렸고, 제가 얼마나 하나님께 소홀했던 아들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육의 내용은 부모의 기도생활과 하나님과의 교감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중요한 영향을 강조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씩 기도하고, 제가 잠든 줄 알고 밤에 몰래 들어오셔서 제 손을 잡고 기도해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딸아이가 세례를 받을 때, 담임목사님께서 저를 돌아보시며, 모든 성도들 앞에서 그날부터 교회에 계속 다니라고 하셨는데, 놀랍게도 저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 결정을 제 마음에 두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날 이후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최선을 다해 주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저희는 그 교회(보스턴 한인장로교회)에 17년 동안 다니면서 저는 EM 디렉터로 봉사했고, 이후에 저는 안수 집사로 아내는 권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집사 안수를 받을 때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많은 여성 성도님들이 뿌듯해 하시던 것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분들은 수년 동안 제 아내와 함께 제가 교회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제 임직식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눈 앞에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탕자처럼 방황하다가 결국 하나님 곁으로 돌아온 저의 경험이 한국계 미국인/다인종 교회에서 , 영어 사역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제 저희가 어떻게 NC와 FKBC에 오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3년 전, 저는 일찍 은퇴를 결정하고 랄리, 덜행 지역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이사 온 후, 처음 2년 동안 다른 교회에 정착해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교회 다닌지 6개월도 안되어 저는 여러 리더쉽 직분을 맡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을 하는 동안 교회의 운영 구조가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졌고, 결국 그 교회를 떠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가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 지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밤 저는 잠이 오지 않아서 성경책을 읽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디도서를 읽게 하셨습니다. 거기에 바울이 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올바른 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 된 고민을 하나님께서 검증해주시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주말에 저희는 Living Hope Raleigh의 온라인 예배를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이수현목사님의 안수 예배였는데 좋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설교한 본문 말씀이 ‘디도서’였을 때 저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FKBC로 가라고 가리키시는 것 같았습니다.

코비드로 인해 몇 달 동안은 온라인 예배를 드렸고, 코비드 상황이 좀 나아지던 작년 9월에 마침내 현장 예배를 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교회의 다른 성도님들을 만나기 어려워 교회에 멤버 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몇 성도님들과 EM의 안수집사님께서 저희를 방문해서 EM/Living Hope Raleigh의 역사와 교회에 대한 비전을 알려주셨습니다. 저 또한 저의 간증과 저와 비슷한 길을 가는 다른 성도님들과 젊은이들을 위해 EM을 섬기려는 저의 소명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비전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그 날 밤 저희는 FKBC 회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는 주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길 것입니다. 한어부 성도님들, 한어부 성도님들은 영어부와 언어 장벽이 있어서 영어부 성도들과 대화를 다소 어려워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인 1세 부인과 결혼한지 30년이 되다보니, 제 한국어 실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저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세요!